롯데택배 전국대리점협의회

▲AI가 만든 이미지 (이미지=제미나이)
대한민국 물류 산업의 오랜 관행이었던 계열사 간 내부 거래의 철옹성이 무너지고 있다. 과거 그룹사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하던 물류 자회사들이 이제는 울타리를 넘어 서로의 안방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택배 현장에서는 수년간 한 택배사에 맡겨졌던 브랜드 배송도 다른 사업자로 갈아타는 사례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당연한 몫'으로 받아들여졌던 물량이 이제는 입찰과 성과 평가의 대상이 되면서, 물류 산업의 문법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무너진 ‘내부 거래’ 철옹성' 계열사 대신 경쟁사 택해
최근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은 국내 대표 대기업인 A사와 B사 간의 대규모 물량 교차 계약이다. 양 그룹은 국내 최고 수준의 물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노선과 품목에 대해서 서로의 경쟁사에 물량을 맡기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수십 년간 그룹사 안에서 유지되던 물류망에 금이 간 이유로는 ‘글로벌 공급망의 한계 비용 도달’이 꼽힌다. 고유가, 인건비 상승,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운임 변동성 등 외부 변수가 통제 불능 수준에 이르면서, 이제는 자사 물류 계열사만을 고집해서는 글로벌 경쟁사들과의 단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이 화주들을 움직였다는 분석이다.
한 화주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물류는 이제 단순한 ‘지원 부서’가 아닌 제품의 최종 가격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됐다”며 “우리 계열사가 잘하지 못하는 노선이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품목에 대해 높은 비용을 감수하면서 억지로 맡기는 것은 결국 그룹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행위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귀띔했다. 즉, ‘우리 식구’라는 명분보다 ‘최적의 경로와 최저의 비용’이라는 실리가 물류 우선순위의 상단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화주사들이 물류사와의 협상력을 강화하고 오랜 기간 누적된 내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그룹사 화주와 물류 자회사 사이의 긴장 관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 그룹사 화주 관계자는 “그룹사 간 물류 단가와 서비스 질을 두고 다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계열사 물량을 당연시하며 혁신보다는 안정적 수익에 안주하던 자회사들에게 ‘언제든 파트너를 바꿀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냄으로써 시장의 긴장감을 불어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교차 계약 사례를 통해 외부 경쟁사의 물류 시스템을 직접 경험하며 내부 자회사의 서비스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잣대가 마련됐다. 이는 향후 재계약과 추가 물량 배분 등에 있어 화주사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전망이다.
오랜 협력 끝내고 택배사도 갈아탄다, '서비스 경쟁 격화'
이 같은 변화는 라스트마일 시장인 택배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오랜 기간 협력하며 함께 성장했던 기업 간 동행은 줄고, 다른 택배사를 새로운 파트너로 맞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해외 명품 브랜드 배송을 오랜 기간 전담하며 ‘명품 물류’ 강자로 꼽혔던 중소 택배사의 물량이 대형 택배사로 넘어갔다. 또한 홈쇼핑을 비롯한 일부 유통업체들도 오랜 기간 함께해 온 택배사를 변경하며 시장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단순한 단가 경쟁뿐 아니라 배송 서비스 경쟁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유통업체들은 주 7일 배송을 넘어 당일 배송 등 초고속 서비스를 강화하며 소비자 만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에 기존 협력 택배사가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경우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어 택배사를 변경하는 강수를 두고 있다.
결국 변화의 핵심은 '서비스 경쟁력의 격차'다. 화주사 입장에서 오랜 협력사가 첨단 인프라를 제때 갖추지 못할 경우, 소비자 이탈을 막기 위해 파트너를 바꿀 수밖에 없다. 단순히 '오랜 인연'이나 '동맹'만으로는 '바로 배송'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량을 뺏긴 택배사들의 생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물량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화주를 유치해야 하는데, 경쟁사가 이미 선점한 고도화된 배송 서비스 구축은 물론 화주를 유인하기 위한 '단가 인하'라는 출혈 경쟁까지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물류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지각변동은 그룹사 지분이나 의리라는 온실 속에서 안주하던 시대가 끝나고 진정한 무한 경쟁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며 "앞으로도 안정적인 물량에만 기대어 혁신을 게을리하는 물류 기업은 냉혹한 시장에서 가장 먼저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한글 기자
26.03.25 물류신문
원문 : https://www.k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0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