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택배 전국대리점협의회

▲ 본 사진은 기사와 무관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AI) 기술 투자가 확대되면서 그래픽카드 등 주요 반도체 및 PC 부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신제품은 물론 중고 시장에서도 가격이 올라 고가 거래가 일상이 됐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택배를 통한 비대면 직거래로 이뤄진다.
PC 부품을 비롯한 고가의 물품이 택배를 통해 오가지만 사고 발생 시 보상 기준이 되는 ‘택배 표준약관’은 과거에 머물러 있어 일선 택배 현장에서는 이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물가는 뛰는데 손해배상 기준은 제자리
현재 택배 산업의 법적 토대인 공정거래위원회의 ‘택배 표준약관’은 2020년 6월 5일 개정된 이후 단 한 차례도 수정되지 않았다. 빠르게 고도화된 2026년 생활물류 생태계와 물가 상승 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가장 큰 쟁점은 비현실적인 ‘손해배상 한도’다. 현행 약관에 따르면 고객(송화인)이 운송장에 물품 가액을 기재하지 않은 경우, 분실·파손 시 손해배상 한도액은 50만 원으로 제한된다. 아무리 고가 물품이라도 송장에 가액을 적지 않으면 50만 원까지만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가액을 기재하더라도 포장당 50만 원을 초과하면 택배사가 별도의 할증요금을 청구할 수 있어 택배 가격을 아끼려는 소비자가 실제 금액을 정확히 기재하기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다.
택배 현장 관계자는 “중고 거래의 경우 상당수가 편의점 무인 접수대를 이용하는데, 가액을 정확히 기재하라는 안내 팝업이 떠도 할증 요금을 피하기 위해 낮은 금액을 적는 경우가 많다”며 “비대면 접수 특성상 고가 물품의 포장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로 인해 사고 발생 시 피해 부담과 감정노동은 고스란히 일선 기사들에게 전가된다. 약관상으로는 고객이 영수증 등 손해입증서류를 제출하면 30일 이내에 사업자(택배사)가 우선 배상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고객들은 문제 발생 시 1차적으로 담당 배송 기사에게 항의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 택배기사는 “중고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컴퓨터 부품은 물론 고가의 명품 등 다양한 제품을 배송하게 되는데, 분실이나 파손 사고가 날까 봐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며 “시장 환경은 크게 변했는데 보상 규정은 그대로여서 일부에서는 소비자와의 분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유출 민감한데 송장에 그대로 노출
보상 한도와 함께 문제로 지적되는 또 다른 문제는 ‘아날로그 종이 송장’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다. 최근 대형 플랫폼의 데이터 유출 사태 이후 소비자들의 개인정보 민감도는 극도로 높아졌다. 이에 개인통관고유부호를 일제히 변경하면서 해외 직구 통관이 일시적으로 지연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그러나 택배 표준약관 제6조 1항은 고객(송화인)이 수화인의 주소, 전화번호, 성명 등을 운송장에 정확하게 작성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제7조 2항 역시 운송장에 송화인과 수화인의 주소, 이름, 전화번호를 기재를 의무화하고 있다. 즉, 기술적 보호 조치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사실상 부재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안심번호(가상번호) 사용 의무화, 이름·주소 일부 마스킹 처리 등 현실적인 보호 조치를 약관에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외부에 무엇을 샀는지 물품 종류를 추정할 수 있는 표기 방식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소비자들의 개인정보 유출 걱정을 이해하지만 종이 송장에서 개인정보를 대폭 축소할 경우 분류·적재·배송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며, 현장 여건을 반영한 단계적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비대면 배송 '기본'인데 약관은 대면이 원칙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정착된 비대면 배송은 이제 소비자와 택배기사 모두에게 가장 효율적이고 당연한 표준 택배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택배 표준약관’은 여전히 ‘대면 인도’ 원칙을 기본으로 두고 있다.
현행 택배 표준약관 제15조(수화인 부재 시의 조치) 제1항에 따르면, 사업자는 운송물의 인도 시 고객(수화인)으로부터 인도확인을 받아야 하며, 대리인에게 인도하였을 경우에는 고객에게 그 사실을 통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2항은 고객(수화인)의 부재로 운송물을 인도할 수 없는 경우, 고객의 요청 시 합의된 장소에 보관하게 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합의된 장소에 보관하는 때에 인도가 완료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택배 기사는 “요즘 배송은 별도 요청이 없으면 현관문 앞에 택배를 두고 가는 게 기본이다. 초인종을 누르면 아기가 깬다, 재택근무에 방해된다며 오히려 항의를 받는다. 그런데 막상 물건이 없어지거나 파손되면 표준약관의 '원칙대로 고객 얼굴 보고 직접 전달했느냐’가 기준이 돼 기사들에게 책임이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 수백 개를 배송하면서 일일이 대면 확인하거나 배송 장소를 매번 요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택배 표준약관도 시대적 흐름에 맞춰 '비대면 배송'을 예외가 아닌 물품 인도의 기본 원칙 중 하나로 명문화하고, 이에 따른 책임 기준과 배송 완료 요건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택배 표준약관이 제정 이후 택배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소비자 라이프스타일과 유통 구조, 배송 방식까지 급변했다. 그러나 제도가 현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그 부담은 결국 기사와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매년 택배 표준약관을 변경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택배 표준약관을 계속 이어가는 것도 무리”라며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춰 불합리한 부분을 손질하고 미래 택배 현장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한글 기자
26.02.25 물류신문
원문 : https://www.k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