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택배 전국대리점협의회
5월 제도 시행 앞두고 반발 확산

10일 소상공인연합회와 한국외식업중앙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소상공인 생존권 운동본부’를 결성하고 정부가 추진 중인 근로자 추정제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송치영 소공연 회장은 “특고·프리랜서 등이 근로자로 인정되면, 사업주는 1인당 연간 505만원의 법정 비용을 추가 부담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소상공인 평균 영업 이익(2500만원) 20%를 넘는다”고 했다./남강호 기자
소상공인연합회와 한국외식업중앙회 등 소상공인 단체들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추진 중인 근로자 추정제는 사회보험료 폭탄과 연쇄 파산을 강요하는 사형 선고”라며 법안 철회를 요구했다. 송치영 소상공인연합회장은 “특수고용·프리랜서가 근로자로 인정될 경우 근로자 1인당 소상공인의 부담은 연간 영업이익의 20%를 넘는다”며 “소상공인이 책임져온 일자리가 사라지는 ‘고용 절벽’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가 최대 870만명으로 추산되는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근로자 추정제’를 노동절(5월 1일)까지 도입하겠다고 하자, 소상공인들이 술렁이고 있다. 근로자 추정제는 타인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면 원칙적으로 근로자로 보고, 4대 보험 등 근로기준법상 사회 안전망을 적용하는 제도다. 임금 체불이나 산재 피해를 당해도 법의 보호를 받기 힘든 사각지대 노동자를 없애겠다는 게 도입 취지다. 근로자성 판단이 엇갈릴 경우, 사용자가 근로자가 아님을 입증할 책임을 지도록 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그래픽=양진경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소상공인과 노동자들은 이 제도가 ‘노사 모두의 소득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입증 책임을 사용자가 지게 되면 법무 대응 여력이 없는 영세 소상공인들이 소송 폭증에 따른 타격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입증 책임 바뀌는 순간 소송 폭증할 것”
택배와 대리운전 등 위탁·자유계약 구조로 운영되는 업종의 위기감이 특히 크다. 택배업은 본사가 대리점과 계약하고, 대리점이 다시 기사와 계약하는 구조다. 서성길 롯데택배 전국대리점협의회장은 “택배 업계의 경우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은 대리점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며 “각종 비용을 제하면 택배 한 건당 고작 10~30원이 남는데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퇴직금까지 더해지면 비용이 30% 가까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출혈 경쟁이 심해 단가 인상은 어렵고 결국 기사에게 받는 수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리점주뿐 아니라 기사들의 수입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대리운전 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장유진 대리운전총연합회장은 “업계 영업이익률이 4~5% 남짓인데 매출의 10% 수준인 4대 보험과 각종 수당을 일률적으로 강제하면 곧장 적자”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 이전 2만원이던 대리운전비가 이미 3만원까지 올랐는데 여기서 더 올리면 손님이 끊길 것”이라고 걱정했다. 건당 계약 구조인 레미콘 업계에서도 인건비가 15% 이상 오를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일부 특수 고용·프리랜서 “수입 감소·고용 위축 걱정"
수혜 대상이 될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적잖다. 경기 남부 지역 택배 기사 강태욱(42)씨는 주 6일, 하루 약 10시간 현장을 뛴다. 배송 4000여 개와 집하 1만개를 처리해 월 500만원 안팎을 번다. 그는 “고되지만 노력한 만큼 가져가는 구조라 잘 버는 사람은 월 1000만원도 번다”며 “만약 근로자로 분류돼 주 52시간에 묶이면 수입이 30%는 줄어들 것 같다. 그러면 굳이 이 일을 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라고 했다. 22년 차 메이크업 미용사 박은경씨는 “봄·가을 (결혼) 시즌엔 월 300만원, 비시즌엔 월 160만원 정도 벌며 자유롭게 일해 왔는데 근로자로 간주되면 부담이 늘어난 업주가 일감을 줄일 것”이라고 걱정했다.
가장 우려가 큰 쪽은 소상공인들이다. 소상공인연합회의 자체 추산에 따르면, 올해 기준 최저임금과 주 40시간 근로를 적용할 경우 특수고용·프리랜서 1명당 사용자 추가 부담은 4대 보험과 퇴직금 등을 포함해 월 42만원, 연간으로는 약 500만원에 달한다. 이는 소상공인 평균 영업이익(2500만원)의 20% 수준이다. 이 단체 관계자는 “4대 보험·장기요양보험·퇴직금을 모두 새로 부담해야 하는 경우를 가정한 수치이지만 소상공인의 부담이 대폭 늘어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근로자 보호라는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정교한 제도 설계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박사는 “입증 책임이 사용자로 넘어가 소송이 늘면 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이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며 “보호와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려한 입법이 중요하다”고 했다.
임채운 서강대 명예교수는 “여러 회사와 일하는 특수고용·프리랜서의 4대 보험 등 사회적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를 비롯해 불분명한 부분이 많다”며 “제도 세부 설계를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임 교수는 “특수고용을 편법적 고용 형태로 보고 직고용을 확대하려는 것인지, 단순히 근로조건이나 임금 개선이 목표인지 등 정부가 의도하는 정책 효과도 보다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근로자 추정제
타인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면 원칙적으로 근로자로 보고, 사용자가 근로자가 아님을 입증하지 못하면 근로자성을 확정하는 제도. 택배·대리운전 기사,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배달 플랫폼 종사자 등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직군 870만명이 대상이다. 노동계는 찬성하지만 인건비 등 부담 급증으로 인한 폐업 위기를 걱정하는 소상공인, 실수령액 감소와 고용 축소를 걱정하는 현장 인력 사이에서 반대 여론이 높다.
박정훈 기자
26.02.11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