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택배 전국대리점협의회
물류업계가 오는 3월 10일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계약서 뜯어고치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산업 특성상 하청과 도급 구조가 고착화된 물류업계는 노란봉투법 시행이 노사 간 불화로 이어져 형사처벌이나 업무에 차질을 겪을지 걱정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노란봉투법에 대응하는 방안 중 하나로 협력사와 맺은 계약서를 수정하는 물류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계약서에 명시된 원청의 지위가 노란봉투법의 사용자성에 해당하지 않도록 변경하는 게 핵심이다. 때아닌 계약서 수정이 유행하면서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노무법인 등에 문의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한편 협력사들은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있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류업은 원청인 물류기업이 직접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청을 받는 1차·2차·3차 협력사 또는 인력을 배치하는 도급사들이 물류를 대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원청과 협력사 간 계약서를 쓰게 되는데, 원청에서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계약서에서 사용자성 즉, 협력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업무 조건을 결정하는 지위를 인정받는다면 협력사 소속 직원들과도 교섭해야 하는 의무를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임금이나 징계, 해고, 안전보건, 부당노동행위 등에 대한 형사처벌이나 파업 등의 리스크도 안게 된다.
원청인 물류기업이 협력사에 현장의 운영권을 모두 부여했더라도 계약서에 사용자성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조항이 있다면 노란봉투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논리다.
계약서 수정을 진행 중이라는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그동안 계약서는 보통 선언적인 문구로 작성해왔고 원청은 관여하지 않되 협력사들이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운영한다고 명시해왔다. 실제로도 협력사들이 인력 관리까지 알아서 운영하고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혹시라도 원청이 요구하는 사항이 계약서에 세부적으로 표기되어 있는지, 그것이 우리가 직접적으로 업무를 지시하거나 사용자성의 지위로 인식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노란봉투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물류 원청사, ‘사용자성’에 협력사에 말도 못 붙이나?
물류업계에서는 노란봉투법 계약서 수정 과정에서 자칫 협력사에게 아무런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는 졸속 계약서를 쓰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취재에 응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원청이니까 협력사에 업무에 필요한 건 요구할 수 있고, 그걸 계약서에 넣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그런데 사용자성에 걸리면 안 된다고 하니까 잘 모르지만 가랑비 피하듯 급하게 컨설팅을 받아 가며 계약서를 고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가 협력사에 창고도 제공하고 시설이나 장비도 제공하는데 뭔가 요구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이해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출퇴근 시간 같은 근태 관련한 문제도 뭔가 요구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그런 것까지 내용을 바꾸거나 삭제하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노란봉투법·중대재해법 교차 지점에 선 원청 기업들
업계에서는 노란봉투법 수정이 능사는 아니라는 말도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원청은 안전보건의 위무를 갖는데, 이게 원청의 지위로 해석되어 노란봉투법에서 사용자성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안전보건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중요한 일 아닌가. 그런데 노란봉투법이랑 결부된다고 하니까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전 문제로 노조, 노동자랑 대화하다 잘못하면 논의 대상이 임금이나 근무 조건까지 확대되면 노란봉투법까지 갈 수 있다고 들었다. 잘못했다가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다”라고 말했다.
컨설팅 내용도 제각각…협력사에게는 쉬쉬
업계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직후인 9월부터 노무법인과 법무법인들의 ‘협력사 계약서 수정 컨설팅’ 영입이 본격화됐다. 이들은 한결같이 물류기업에게 협력사, 도급사와의 세부 계약 중에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는 조항을 수정하는 것이 노란봉투법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세부적인 사항을 보면 조금씩 차이가 있어 누구의 말이 옳은지에 대해서도 혼란이 적지 않다.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노무법인과 법무법인에 각각 컨설팅을 받고 있는데, 어떤 곳은 계약서에 노조나 업무, 근로자 같은 단어도 가급적 최소화하는 게 유리하다고 한다. 다른 곳은 두루뭉술하게 명시하지 말고 아니라고 단어 하나라도 정확하게 넣는 것이 더 낫다고 하더라. 누구의 말을 들어야 좋을지 몰라서 일단 진행은 하고 있지만 컨설팅 비용만 날리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컨설팅을 받지 않고 관망하는 물류기업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정부의 지침에서 아직 불확실한 부분들이 많다며 시행 이후 상황을 지켜보다가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협력사들은 원청의 계약서 움직임을 알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원청 기업들은 아직 협력사에게 컨설팅을 진행 중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협력사들 중에서도 원청에서 계약서 컨설팅을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데 모를 수가 없다. 원청에서는 2~3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계약을 다시 수정하자고 말하기가 껄끄러운 부분이 있고, 협력사에서도 원청에 계약서가 바뀌면 우리가 어디까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묻기 난감할 것”이라면서도 “컨설팅을 진행 중인 원청 기업들은 늦어도 2월 중순쯤에는 협력사들과 계약서 수정 논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계약서 고쳐도 사용자성 기준은 여전히 모호
노란봉투법 대응을 위한 계약서 수정이 협력사 혹은 도급사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거나 업계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취재에 따르면 다수의 협력사들은 원청 물류기업들의 계약서 수정 움직임을 알지 못하고 있다. 컨설팅을 받고 있다거나 계약서 수정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원청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원청에서 알리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은 협력사들이 이탈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사실 협력사들 중에서도 계약서 수정 사안에 대해 알고 있지만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데 이걸 모를 수가 없다. 다만 원청 입장에서는 협력사, 도급사들과 계약 단위가 대부분 2~3년이다 보니 노란봉투법을 이유로 계약서를 다시 쓰자고 말하기가 껄끄러운 면이 있다.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걸 명시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판례 없는 노란봉투법, 실제 적용 양상 단언하기 어려워
물류업계는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정작 법조계 전문가들은 계약서 수정이 해결책이 될 수 있냐는 질문에 100%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선언적인 문구로 바꾼다, 노조라는 단어를 삭제한다, 서비스 수준 정도만 명시한다 등등 여러 방안이 있지만, 실제로 노란봉투법에 효과가 있을지 알 수 없다. 판례가 없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도 아직 명확하다고 보긴 어렵다. 따라서 기업의 대응 방안을 제시하거나 실제 노조가 교섭 카드로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법무법인 관계자는 “사용자성 회피에 한정한다면 계약서보다 현장 관리자가 원청의 지시를 받는 정황이 기록되는 게 더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 사전에 현장의 처우를 개선하거나 이러한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협력사와 계약을 맺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라며 “노조나 노동자들도 노란봉투법이 무조건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오산이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교섭이 진행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노조에 유리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점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경성 기자
26.02.05 물류신문
원문 : https://www.k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9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