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택배 전국대리점협의회

“새벽배송이 2급 발암물질이라고요? 국제암연구소(IARC) 분류상 1군 발암물질에는 ‘햇빛’과 ‘알코올’도 있습니다. 노동부 장관의 논리대로라면 햇빛을 쬐며 일하는 주간 택배야말로 금지해야 하고, 퇴근 후 치맥 한 잔도 발암 행위가 됩니다. 고작 이런 논리로 하나의 산업을 금지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난 1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혁신당과 택배기사 비노조연합이 공동 주최한 ‘새벽배송 금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는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새벽배송 금지 방침에 대한 성토의 장이었다. 참석자들은 새벽배송 금지 논의가 정작 현장에서 뛰는 배송기사와 소상공인 등 당사자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성열 개혁신당 최고위원은 개회사에서 “당사자들이 빠진 채 탁상공론으로 밀어붙여지는 새벽배송 금지 논의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차분히 따져보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며 “노동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오히려 노동자의 선택권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이 소비자의 일상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묻고자 한다”고 말했다.
“수수료 구조 투명화·실질 소득 향상이 근본 해법”
발제자로 나선 김슬기 택배기사 비노조연합 대표는 “새벽배송을 선택한 기사들은 교통체증이 없는 쾌적한 근무 환경과 비교적 높은 소득, 낮 시간을 활용한 육아 등 각자의 이유가 있다”며 “정부가 과로를 막겠다며 시행한 ‘오후 10시 이후 배송 제한’이 오히려 기사들의 휴식 시간을 빼앗고, 시간 내 배송을 강요하는 ‘타임 어택’을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제로 새벽배송을 막으면 줄어든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낮에는 택배를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는 ‘투잡’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며 “이것이 과연 노동자의 과로를 막는 길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형성된 ‘과로사 프레임’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김 대표는 “과거 CJ대한통운 등에서 과로사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택배비 인상과 사회적 합의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물량 이탈을 초래해 쿠팡의 성장을 도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가를 건드려 시장을 왜곡하는 전철을 밟기보다 원청과 대리점 간 수수료 구조를 투명화해 기사들의 실질 소득을 높이는 것이 과로를 막는 근본적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당사자 빠진 사회적 대화, 왜 새벽배송만 금지하나
정부와 여당의 ‘사회적 대화’ 파트너 선정 방식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현재 사회적 대화에는 정부와 여당, 주요 택배사, 노동조합 등이 참여해 새벽배송 금지 논의를 진행 중이다.
정진영 쿠팡노동조합 위원장은 “새벽배송의 직접적인 당사자는 쿠팡과 협력업체 소속 기사들인데, 정작 우리는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배제됐다”며 “새벽배송을 하지도 않는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왜 우리의 생계를 좌우하는 논의를 주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전 9시부터 배송을 시작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배송 이전에 간선 작업과 분류 작업 등 수많은 선행 공정이 필요하다”며 “배송 노동자보다 분류 노동자가 6배 이상 많은 현실에서 배송만 콕 집어 금지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또 “야간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에는 동의하지만, 해법은 금지가 아니라 임금 인상과 주정차 단속 완화 등 주간 배송 환경 개선을 통한 ‘유인책’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성기 쿠팡노조 부위원장은 ▲악천후 시 배송 시간 제한 자동 완화 ▲대리점 수수료 상한제 도입 ▲폭염 시 실질적인 휴게시간 보장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금지가 아닌 현장 맞춤형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봉섭 태경로지스 벤더사 대표는 “쿠팡 파트너스 연합회(CPA)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현장 기사 93%가 새벽배송 금지에 반대했다”며 “맞벌이 가정의 한 기사는 배송을 마친 뒤 출근하는 아내 대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있는데, 국가는 육아를 책임져 주지도 않으면서 왜 이런 규제를 하느냐고 묻는다”고 전했다. 그는 “이는 편의점 사장에게 24시간 영업을 하지 말라고 하거나, 호프집 사장에게 자정 이후 장사를 금지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한편 오장원 천우로지스틱스 대표는 이날 현장에서 야간 배송 기사들이 제출한 새벽배송 금지 반대 탄원서 500건을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에게 직접 전달했다.
새벽배송 금지, 노동과 소비 모두 놓친 정책
새벽배송 금지가 배송기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통 생태계 전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류필선 소상공인연합회 전문위원은 “쿠팡 등 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한 소상공인이 25만 명을 넘고, 이들의 거래액만 12조 원에 달한다”며 “새벽배송이 금지될 경우 신선식품을 판매하는 소상공인들은 판로가 막혀 약 18조 원 규모의 매출 타격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골목상권의 카페 사장들조차 새벽배송으로 원두와 우유를 공급받아 영업하는 시대”라며 “플랫폼 규제는 결국 영세 소상공인의 손발을 묶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수희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위원장은 “야간 노동 문제를 전면 금지로 단순화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책 접근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소비자에게 새벽배송은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 생활 인프라”라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 편익과 노동자의 건강권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충분히 조화될 수 있다”며 “일방적인 금지는 소비자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야간 근무가 불가피한 경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연속 근무 제한과 충분한 휴식 보상을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제언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개혁신당 지도부는 ‘자유’와 ‘선택권’을 강조하며 새벽배송 금지 논의를 비판했다.
이준석 당대표는 “정치권은 필요할 때는 새벽 노동자를 ‘산업의 역군’이라 치켜세우다가 정치적 필요에 따라 규제 대상으로 삼는다”며 “대형마트 규제가 쿠팡의 독주를 낳았듯, 섣부른 규제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하람 원내대표도 “쿠팡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형마트에 묶여 있는 새벽배송의 족쇄를 풀어 공정한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며 “전통시장 보호라는 명분으로 대형마트 영업을 제한했지만 반사이익은 전통시장이 아닌 식자재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이 가져갔다”고 말했다. 이어 “실패한 규제 정책을 온라인 유통에까지 확장하려는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혁신당은 이날 토론회에서 제기된 의견을 종합해 관련 법·제도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석한글 기자
25.12.19 물류신문
원문 : https://www.k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9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