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택배 전국대리점협의회

▲AI가 생성한 이미지
쿠팡의 물류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가 CJ대한통운, 한진에 이어 배송 현장에서 관행처럼 굳어진 이른바 ‘계정 공유’ 행위에 대해 차단을 예고했다. 이에 대해 택배 현장에서는 주요 택배사들이 ‘주 7일 배송’, ‘주 5일제 근무’ 등을 내걸면서도, 이를 지탱할 ‘비용(단가 인상)’과 ‘인력(추가 고용)’에 대한 투자는 외면한 채 가장 손쉬운 방식만 선택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CLS는 최근 전국 대리점에 ‘택배기사 계정 공유 금지’를 골자로 한 운영 공지를 전달했다. 이번 공지의 핵심은 ‘1인 1기기 1계정’ 원칙이다. 배송기사는 등록된 본인의 단말기에서 자신의 ID로만 접속해야 하며, 타인의 ID를 대여하거나 가족·지인의 명의로 생성한 ID를 이용해 배송할 경우 적발 즉시 접속 권한이 박탈된다.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영업점에도 페널티가 부과된다.
한편 CJ대한통운도 올해부터 주 7일 배송을 시작하며 2~4인이 1조가 되는 순환근무제 도입을 예고했지만, 현장에서는 인력난으로 인해 제대로 된 조 편성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이로 인해 7일 연속 근무자가 속출했고, 과로사 위험이 커지면서 이미 배송 앱 차단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
안전장치 무용지물 만든 만연한 ‘계정 공유’
쿠팡이 갑작스럽게 계정 공유를 차단한 배경에는 잇따른 과로사 논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지난 11월 10일 새벽, 제주에서 쿠팡 새벽배송을 하던 오승용 씨는 전신주를 들이받는 사고로 숨졌다. 사고 직전 그는 부친상을 당해 3일간 장례를 치른 뒤 단 하루만 쉬고 현장에 복귀한 상태였다.
문제는 오 씨의 근무 기록이었다. 노조 조사 결과, 제주 모 대리점의 업무용 카카오톡 단체방에는 동료의 ID와 비밀번호를 공유하며 배송을 지시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고인은 사고 당일 공식 휴무일이었지만, 동료의 ID로 접속해 319건의 물량을 배송했고, 결과적으로 8일 연속 근무하는 등 휴무 없이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쿠팡은 과로사 방지를 위해 원칙적으로 7일 연속 근무를 제한하고 주 60시간 근무 준수를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물류 현장에서는 타인의 ID로 로그인해 시스템의 감시망을 피하는 ‘계정 공유’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쿠팡도 타사처럼 기기 고유 식별 번호(IMEI) 등을 활용해 접속 기기를 통제함으로써, ID만 바꿔 로그인하는 편법을 차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조치가 최근 일어난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내부 통제 강화 목적도 있다는 분석이다. 배송 앱에는 고객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담겨 있는데, 계정을 공유할 경우 고객의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도 늘어난다. 만약 계정 공유가 만연한 상황에서 사고나 범죄가 발생하면 실제 배송원을 추적하기 어려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앱 끄면 해결될까…원인 놔두고 결과만 막는 ‘반쪽 처방’
국내 주요 택배사들은 ‘주 7일 배송’과 택배기사들의 ‘주 5일 근무’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택배 현장의 현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인력 운용의 난이도는 극도로 높아졌지만 처리해야 할 물량은 똑같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시스템으로 편법을 막더라도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또 다른 편법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 7일 배송 체제에서 기사들에게 주 5일 휴식을 보장하려면 필연적으로 추가 인력 고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택배 단가 구조로는 대리점이 독자적으로 충분한 예비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365일 물량을 처리하면서 기사들의 휴무까지 보장해야 하는 대리점 입장에서는 대체 인력을 구하지 못해 직접 배송에 나서거나, 기사들의 무리한 연장 근무를 묵인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적정 단가 책정과 예비 인력 제도 정착 없이 내놓는 ‘접속 차단’ 정책은 가장 쉽고 비용이 들지 않는 방식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특수고용노동자(특고)라는 신분적 한계와 시스템의 허점이 맞물리며 오히려 더 위험한 노동 환경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배송 앱 차단으로 수입이 줄어든 택배기사가 추가 수익을 위해 타 택배사에서 야간 배송을 하는 경우, 현행 시스템상 이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
한 택배기사는 “시스템 차단은 과로의 ‘결과’를 막을 뿐, 과로를 유발하는 ‘원인’인 고강도 노동과 낮은 단가, 불안정한 고용 구조는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기사들은 생계또는 더 많은 수입을 위해 주간 배송을 마친 뒤 야간 배송까지 병행하고 있다”며 택배기사의 근무 시간을 ‘정확하게’ 관리하는 것 자체가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택배사를 넘나들며 배송하는 경우, 택배사 간 데이터 공유를 통한 교차 검증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앱 차단만으로는 과로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한글 기자
25.12.19 물류신문
원문 : https://www.kl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9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