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성길 롯데택배전국대리점협의회 회장(왼쪽)이 11월 23일 서울 중구 롯데택배전국대리점협의회 사무실에서 <노동법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오른쪽)이 11월 25일 서울 서대문구 택배노조 사무실에서 <노동법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지예 기자 jyjy@)
지난 10월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과 롯데택배전국대리점협의회가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문 이행을 위한 상생협약식'을 가졌다. 택배 노사가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6월 체결한 사회적 합의를 성실히 이행하고 안착시키자는 취지다. 사회적 합의 이행을 두고 갈등과 쟁의행위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택배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쟁의행위를 자제하고 협의를 우선 진행하자는 게 협약 내용의 골자다. 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택배) 측의 역할이 필요한 경우에는 협의를 요청한다. 대리점은 노조를 인정하고 노조는 소모적인 파업보다는 대화에 먼저 나서는 형태다. 상생협약이 어떻게 이뤄지게 됐는지, 현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앞으로 택배 노사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과 서성길 롯데택배전국대리점협의회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의 이야기를 가상 대담 형식으로 정리했다.
진경호 위원장 :
진
서성길 회장 :
서
Q 상생협약을 맺게 된 계기는? 어느 쪽에서 먼저 제안했는지도 궁금하다.
서 노조 측에서 먼저 요청을 했다. 회장이 되고 택배현장에 급격하게 변화가 일어나고 쟁의행위도 일어나는 걸 보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왜 택배기사들이 생업을 포기하면서 파업을 해야 하나. 파업 현장도 직접 가고 쟁의행위를 하는 내용을 알아보니까 노조 측에서 주장할 수 있을 법한 내용들이었다. 대리점장의 잘못된 행동도 있었고 파업을 하는 이유가 이해가는 부분도 있었다. 이걸 먼저 선제적으로 대화해서 풀어가면 어떨까 고민하던 차에 협약 제안이 있었다.
진 택배 현장이 너무 불안정했다. 과거에는 법과 제도도 미비했고 현장에서 감정이 상하게 되면 파업으로 가게 된다. 파업을 하게 되면 국민들의 서비스가 차질을 빚고 악순환이 반복됐다. 최근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 시행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서 법과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어느 정도 됐다고 판단한다. 이런 것들이 온전히 실행되기 위해서는 악순환을 끊어야겠다고 판단했다. 노사가 안정적인 택배 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현장에서 불가피하게 문제가 불거지면 사전에 먼저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Q 서 회장님의 말이 인상적이다. 파업 현장을 직접 보면서 생각이 달라진 건가
서 현장에 나가면서 바뀌게 됐다. 대리점 회장으로서 대리점을 일단 보호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쟁의행위가 일어나고 파업이 일어나면서 여러 군데서 불편을 겪고 피해가 생겨났다. 택배기사뿐만 아니라 택배업에서 종사하는 모든 종사자에게 전부 피해가 가고 고객들도 피해를 입는다. 그런데 현장에 나가 대화를 하다 보니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들도 이유가 있더라.
Q 회장님은 작년에 처음 대리점협의회 회장으로 당선됐는데 작년에 특히 택배산업에서 분쟁도 이슈도 많았다. 쉽지 않은 한해였을 것 같다.
서 정말 힘들었다. 코로나19가 생기면서 물량이 급격하게 늘고 노조 활동도 왕성하게 변했다. 과로사 문제가 생기면서 정부까지 나섰고 국회와 대화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특히 파업을 하면 모든 게 마비가 되기 때문에 역할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람도 있었다. 당시 김장비닐 하나 치고 비 맞으면서 어깨로 짐을 올리는 게 현실이었다. 이런 건 해결해줘야 하지 않나.
Q 진 위원장님은 이러한 입장 변화가 느껴졌나.
진 다른 택배사와 다르게 롯데택배는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롯데택배 본사도 노사문제가 안정적으로 전개되는 것에 대해 강한 의지가 있었던 것 같다.
Q 서 회장님 입장에서는 대리점주를 설득하는 문제도 있었을 것 같다.
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다. 처음에는 내부 논란이 정말 많았다. 노조를 인정하고 대화를 하자고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논쟁도 있었다. 그런데 진 위원장이 협약을 체결하기 전 신뢰를 줬다. 어쩔 수 없이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 생기더라도 법 테두리 안에서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사전에 접촉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신뢰가 생겨 받아들이게 됐고 설득도 할 수 있었다.
진 아마 진심이 통했던 것 같다. 전술적으로, 눈가림을 하자고 그랬던 게 아니라 사람 간 진심이 통한 게 아닐까. 대화를 하면서 서 회장도 문제 해결에 대해 인식을 같이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현장에서는 문제가 안 불거질 수는 없다.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다른 택배사와 롯데택배가 현격히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롯데택배는 사전에 더 큰 갈등으로 발전하지 않기 위해 논의에 나서는 게 안착되는 것 같다.
Q 협약 중 쟁점이 된 내용이 있었나
진 원청이 얼마만큼 대리점과 노조 협약을 지지하고 지원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실제 택배 현장에서는 대리점이 갖고 있는 권한이 제한적이다. 대리점과 사전 논의를 했을 때도 해결되지 않으면 롯데택배에 해결을 요청해야 한다. 롯데택배 본사도 전향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고 협약 취지에 동의했기 때문에 합의가 이뤄질 수 있었다.
서 대리점 측이 요구했던 것은 대리점 경영권을 간섭하는 파업은 자제해달라는 것이었다. 간혹 대리점을 전복시키기 위한 파업이 있다. 대리점들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고 20여 년 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 피땀 흘려 쌓아온 사업체인데 함부로 간섭하거나 무너뜨리기 위한 파업은 자제해달라는 것이었다.
진 대리점이 갑질을 하거나 법을 어기거나 했을 때 노조가 대리점 소장 퇴출 운동을 많이 하기도 했다. 이번 협약 정신은 노조도, 대리점도 본사도 잘못할 수 있는데 서로 자정 노력을 하자는 거다. 사회적 기준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잘못을 감싸서 갈등을 만들기보다는 체불이나 해고하는 등 용인할 수 없는 문제들은 자정 노력으로 정리하자는 취지다. 대리점은 우리에게 갑의 지위일 수 있지만 택배사와의 관계에서는 종속 관계에 놓여 있다. 일반적인 사용자와는 개념이 달라 노조와도 협력할 수 있는 구조라고 보고 있다. 대리점과 함께 가고 정도를 넘으면 자정 노력으로 해결했으면 한다.
Q 협약 이후 체감하는 변화가 있다면
진 일단 롯데택배에서는 쟁의행위가 중단돼 있다. 문제가 불거지면 협약문에 나와 있는 대로 사전에 논의기구가 작동된다. 사전논의기구로 상당 부분 갈등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것들이 극한 대립 없이 해결되는 사례가 꽤 나오고 있다.
서 노조 측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협의회에 알려서 대화를 시작한다. 서로 합의를 해서 본사에 요청할 건 요청하고 해결점을 찾는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예로 들자면 파업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서 조합원과 대리점주가 서로 고발하려고 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노조와 함께 현장에 내려가서 대화의 장을 마련했고 고소고발로 이어지지 않고 해결할 수 있었다. 불신에 차있던 현장에서 믿음을 갖고 협력해서 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각 대리점에서도 반응이 많이 나온다. 협약식 이후 다른 택배사에서는 파업이 일어나고 있는데 롯데택배는 파업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고객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었다. 노조 설립으로 현장에 긴장이 생기기도 했는데 대화를 통해 이를 복원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Q 대화만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을 것 같다.
진 대리점과의 문제가 아니라 원청과 관계에서 파생될 수 있는 문제는 있겠다. 본사에서 택배산업과 관련된 정책을 의견 수렴 없이 진행한다면 충돌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사전협의기구의 안착을 위해 원청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어떤 문제든 의견을 수렴하는 사전 절차가 있다면 오해로부터 빚어지는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들지 않겠나.
Q 사회적 합의 이행에 어려운 부분은 없나.
서 사회적 합의의 경우 작업현장 부지라든지 자동화 시설 구축 비용이 많이 들어가게 되면 본사에서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단가는 대리점에서 마음대로 인상할 수 없고 지역적 특성 탓에 배송이 원활하지 못한 경우 본사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줘야만 하는 어려움도 있다. 사회적 합의 이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택배기사들을 분류작업에서 해방시키는 거다. 재원 마련이 필요한 부분인데 롯데택배 측에서 고객들에게 양해를 구해 택배 단가 170원을 인상해서 분류작업 비용으로 사용하려는 노력하고 있다. 또 그 전에는 마구잡이로 물품을 받았다면 이제는 센치를 제한하고 부피나 무게를 줄여서 노동 강도를 줄여주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본사와 지속적으로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진 롯데택배는 사회적 합의를 충실히 이행하려고 노력하는 택배사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인상분을 전액 대리점에 내려줬고 그 범위 내에서 대리점이 운용할 수 있다. 현재까지 다른 택배사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에 비해 긍정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가끔 (인상분) 배달 사고가 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기자회견하고 공론화했을 텐데 지금은 노조가 파악한 명단을 대리점 측에 전달하면 대리점이 본사와 함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해결한다.
Q 협약은 대리점과 노조 두 당사자가 맺었지만 롯데택배의 역할도 매우 중요해 보인다. 협약 체결 과정에서 롯데택배가 한 역할도 있었나.
서 진 위원장과 합의를 하면서 본사 측과 의견 교환을 했다. 대리점과 노조가 상생협약을 맺고 대화를 하기로 했는데 문제가 생기면 본사에서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는지 의견을 요청했는데 본사도 대화를 통해 해결점을 찾는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진 롯데택배 측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작년 6월경 울산지역 롯데택배에서 1달간 파업이 있었다.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지점과 소장이 위장폐업을 한 사안이다. 파업이 굉장히 격렬했다. 이런 투쟁을 거치면서 롯데택배가 충돌이 생기면 생길수록 양쪽 모두 힘들다는 걸 인식하고 전략을 바꾸지 않았나 생각한다. 타 택배사였으면 갈등이 더 심했을 수도 있다.
Q 노조는 궁극적으로 원청과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진 대리점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원청이 아니면 못하는 영역이 있다. 원청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의제가 있기 때문에 지난 6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씨제이 대한통운이 교섭하라는 판정이 나온 거다. 내년 6월 전후로 씨제이 대한통운이 제기한 행정소송 1심 판결이 나올 거라고 보고 있다. 이때가 원청과의 교섭이 전면화되는 타이밍이라고 본다. 택배사 전체와 노동조합이 산별교섭을 통해 논의테이블이 만들어지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Q 앞으로의 택배산업에서의 노사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진 노조는 기본적으로 파업을 자제하고 사회적 합의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을 기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롯데처럼 긍정적으로 상생협약식을 맺는 방향이다. 그런데 씨제이 대한통운이나 우정사업본부의 경우 그럴 수 없는 상황으로 돌입하고 있다. 택배산업 노사관계는 두 가지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본다. 롯데택배의 길로 갈 거냐, 우정사업본부와 씨제이 대한통운 모델로 갈 거냐 선택에 놓여있다. 여러 변수는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 투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서 택배산업이 생긴 이후 처음으로 상생협약을 맺었다. 그만큼 더욱더 현장 목소리를 듣고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아가면서 노사가 같이 가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문제점을 해결하면 택배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관계가 될 거라고 기대한다.
원문 https://www.worklaw.co.kr/view/view.asp?accessSite=Naver&accessMethod=Search&accessMenu=News&in_cate=104&in_cate2=1004&gopage=1&bi_pidx=33530
출처 2021.12.07 월간노동법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