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택배 전국대리점협의회
중노위는 2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이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은 씨제이(CJ)대한통운에 대해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 사건에 대해 앞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의 결정을 뒤집고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택배업체인 씨제이대한통운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이므로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은 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노조법은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해태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라고 규정한다. 회사로부터 부당노동행위를 당한 노동자는 고용노동부 소속 행정기관인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할 수 있다.
앞서 택배노조는 지난해 3월 원청인 씨제이대한통운에 단체교섭을 요청했다. 택배기사는 택배업체 본사와 직접 계약을 맺지 않고 지역별 대리점과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다. 대리점은 택배업체를 대신해 택배 상품을 접수하고 운송하는 등의 업무 전반을 총괄한다. 하지만 전국 택배 운송 시스템을 운용하는 건 택배업체이다 보니 대리점이 택배기사의 배송 시간이나 작업 내용 등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권한은 없다. 이 때문에 택배노조는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려면 대리점이 아닌 택배업체와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씨제이대한통운을 비롯한 택배업체는 ‘계약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해 왔다.
이 때문에 택배노조는 지난해 9월 씨제이대한통운이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 것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서울 지노위에 구제 신청을 접수했고, 서울 지노위는 지난해 11월 ‘씨제이대한통운을 사용자로 볼 수 없다’며 사건을 각하 처리했다. 하지만 택배노조는 여기에 불복해 지난 1월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고, 이번에 중노위가 서울 지노위의 결정을 뒤집고 택배노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해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된 건 2008년 현대중공업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사내 하청업체 노조를 와해시키려고 하청업체를 폐업시킨 행위가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당시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이 “사내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기본적인 노동조건에 관해 실질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봤고 “사내 하청업체의 사업 폐지를 유도해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행위는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의 시정과 구제명령을 이행하는 주체로서의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자의 노조법상 사용자로서 ‘하청업체 노조에 개입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그러나 이런 판결을 확장해 원청이 하청업체 노동자와 단체교섭의 의무까지 지는 사용자인지에 대해선 법원과 노동위원회 모두 부정적이었다. 단체교섭의 의무를 지는 노조법상 사용자는 고용 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법적 해석이 지배적이어서다. 지난 1일에도 중노위는 한국지엠 등 12개 사업장 하청 노조가 ‘원청과 교섭을 원한다’며 쟁의 조정을 신청하자 원청은 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했다.
하지만 중노위는 이번 사건의 경우 단체교섭에 있어 원청의 사용자 지위를 처음 인정하는 결정을 했다. 판정 이유는 판정일로부터 30일 이내에 교부되는 판정서를 봐야 파악할 수 있다. 이 사건을 담당한 김종진 서비스연맹 법률원 노무사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노조를 결성하는 주된 목적은 단체교섭을 하고자 함이므로 실질적으로 권한이 있는 사람과 교섭을 하는 게 마땅한 것”이라며 “이번 판정은 그런 취지를 최초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도 “이제까지는 단체교섭에 임하는 사용자가 곧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라는 법적 해석이 주를 이뤘는데 이 판정은 사용자성을 확장했다”며 “사실상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상황 변화를 법이 쫓아가려면 하청노동자가 원청과 교섭을 하는 게 맞고 그런 점에서 이번 판정은 단순히 씨제이대한통운만의 문제가 아니라 단체교섭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큰 변화”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원·하청 고용 구조를 가진 현대자동차 등 다른 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등은 원청인 현대자동차에 교섭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으나 현대자동차는 ‘계약상 사용자가 아니라’며 응하지 않았다. 윤상섭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지회장은 “택배노조 결정에 힘입어 노동위원회에 판단을 구해보겠다”고 말했다.씨제이대한통운은 중노위의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씨제이대한통운 쪽은 이날 입장을 내어 “중노위의 판정은 대법원 판례는 물론 기존 중노위, 지노위의 판정과도 배치되는 내용으로 다툼의 여지가 많다”며 “중노위의 결정에 유감을 표시하며 결정문이 도착하면 검토 후 법원에 판단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